"

행복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루이 아라공(김남주 번역)


자기의 힘도 나약함도 마음도 인간의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이 팔을 벌려 친구를 맞이하며 기뻐할 때
그 그림자는 십자가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을 껴안았다고 생각했을 때 사람들은 행복을 깨부순다
인생이란 고통에 찬 무상한 이별이다
행복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인생은 다른 운명으로 무장을 해제당한
저 무기를 휴대하지 않는 병사들과 같다
아침에 그들이 일어나도 이미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저녁에는 또 할 일이 없고 마음은 방황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인생이다”라고 속삭이며 눈물을 참는 것이다
행복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내 가슴을 쥐어뜯는 상처여
나는 그대를 상처입은 새인 양 껴안고 간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가 짠 언어를 내 뒤에서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 언어는 그대의 커다란 눈과 마주치면 갑자기 퇴색되어버렸다
행복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살 길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기에
우리들의 마음은 밤 속에서 일제히 우는 것이다
조그마한 노래 하나를 짓는 데도 불행이 필요한 것이다
몸짓 하나를 하는 데도 회한이 필요한 것이다
기타 한 줄을 치기 위해서도 흐느낌이 필요한 것이다
행복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그리고 그대에 대한 사랑도 조국애와 같은 것
눈물로 키워지지 않는 사랑은 없다
행복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우리 두 사람의 사랑인 것이다

행복한사랑은어디에도없다루이아라공김난주번역

"

0 notes

"

호르몬그래피

-김행숙

호르몬이여, 저를 아침처럼 환하게 밝혀주세요. 분노가 치밀어오릅니다. 태풍의 눈같이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 자가 제게 사기를 쳤습니다. 저 자를 끝까지 쫓겠습니다.

당신에게 젖줄을 대고 흘러온 저는 소양강 낙동강입니다. 노 없는 뱃사공입니다. 어느 곳에 닿아도 당신이 남자로서 부르면 저는 남자로서

당신이 여자로서 부르면 저는 여자로서 몰입하겠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세번째, 네번째, 일곱번째 사다리에서 거지가 될 때까지 카드를 만지겠습니다. 녹초가 되게 하세요. 호르몬이여,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로 눈꺼풀을 내리시고

제 꿈을 휘저으세요. 당신의 영화관이 되겠습니다. 검은 스크린이 될 때까지 호르몬이여, 저 높은 파도로 표정과 풍경을 섞으세요. 전쟁같이 무의미에 도달하도록

신성한 호르몬의 샘에서 영원히 반짝이는 신호들.

"

호르몬그래피, 김행숙 <이별의 능력> 중에서

나의 키다리 아저씨

#1

"생일 축하한다, 소연아."

멋쩍게 내민 케익에는 새하얀 생크림이 소복했다. 얼른 퇴근이나 하시라고 그렇게 만류했건만 아빠는 과연 내가 알바하고 있는 가게까지 오셨다. “우리집은 원래 음력 챙기는데 넌 왜 양력 생일 하냐”는 너스레도 잊지 않으셨다.

반오십 평생 처음 내게도 음력 생일이 있단걸 알았다.

#2

2013년 4월 13일 토요일, 나는 부천에 있는 부모님댁으로 갔다. “가족인데 2주에 한 번은 봐야지 않겠냐”며 아빠가 멋대로 정한 ‘전 가족 회동일’이었기 때문이다. 2주 전과 마찬가지로 어색하게 TV에만 시선을 꽂고 있을 때 갑자기 아빠가 다가왔다,

"4월 16일이 음력으로 쳤을 때 니 생일이야"

지난 20여년 가까이 나도 내 친구들도 (주민번호에 명시된) 4월 12일을 생일로 여겨왔고, 어제도 애인과 조촐한 생일파티를 했던 터라 나는 다소 당황했다. “내 음력 생일이 몇 일인데요?” 아버지는  ”잠시만” 하며 핸드폰 캘린더를 찾으시다 이내 쭈뼛거리며 본인의 방에 들어가셨다.

#3

아빠는 늘 이런 식이었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든, 본인이 편한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이러한 언행의 배후는 체면치레였다. 체면때문에 그는 몰라도 아는 것처럼 행동했으며 알아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몰라도 되는 것들이 주로 전자에 속했고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 후자에 속했다. 특히 후자는 나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 것이 많았다. 이를테면 아빠와 내 생모가 20년간 부었던 적금을 계모가 “불려주겠다”며 자신의 통장에 입금하라고 생전 처음 내게 전화를 걸어왔던 것(계모는 내 등록금이 아까워 “여자가 대학가서 뭐하냐”며 대학교 입학을 만류하면서 본인의 아들에게는 한 달에 대략 100만원 정도의 영어유치원을 보낸 바 있다)들 이다. 당연히 나는 안 주겠다고 버텼고 계모는 “딸년 때문에 억울하다”고 “이혼하자”며 떼를 썼다. 2번 이혼 당하기 싫었던 아빠는 내게 “넌 왜 인간이 덜 됐냐”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나의 인성만을 탓했고, 200만원의 돈은 지금 계모의 통장에 있다.

#4

4살에 이혼했던 아빠는 이후 13년간 해외 근무를 자처하셨고 나와 한살 터울의 남동생은 둘만 집에 있거나 조부모님과 함께 지냈다. 할머니는 나와 동생을 돌보는 것에 지치셨는지 “애들한텐 엄마가 필요하다”며 재혼을 주선했고 아빠는 원치 않는 재혼을 하셨다. 애 둘 딸린 대기업 부장. 그리고 시골 출신의 변변찮은 조부모. 군대를 3번 지원했다 떨어지고 노처녀로 돌아가실 뻔한 35세 우울증 환자와 재혼한 건 한국의 계급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5

없느니만 못한 계모를 피하고자 나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통학했던 내 남동생이 계모의 폭력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간 건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6

대학 입학 후 처음 아빠, 계모와 처음 같이 살게됐지만 난 적응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내게 줄 돈은 없다고 선언한 계모는 대학교 등록금도 아까워했다. 본인의 아들은 내 등록금 이상의 영어 유치원을 보내며 면세점을 이용해 해외 브랜드의 옷과 가방을 매달 사입혔다. 물론 아빠는 모르는 척했다. (또 이혼 당하면 망신이니까) 나는 가출했고 학교 공부와 별개로 과외, 알바를 하며 생계를 이었다. 매일 계모 눈치를 보는 아빠가 내게 방세를 내줄 리가 없잖아.

#7

그렇게 3,4년. 본인의 쓰잘데기 없는 재혼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나의 ‘가출’로 심한 도덕적 책임을 지우던 아빠는, 고등학교 때까지 챙겨주던 4/12일 양력 생일을 모두 챙겨주지 않았다. 나 또한 당연한 것이라고, 평생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달리 섭섭할 것도 없었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가족이란 혈연에 앞서 공통의 사연이 있는 관계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과 함께한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오히려 불편한 생일챙김이었으므로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이(혹은 모르는 것이) 편했다.

#8

2년 전 아빠가 암으로 수술했다. 공황장애도 있었다.가족과 왕래가 없던 나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함께 살던 계모도 마찬가지였고. 운전대를 잡은 팔이 말을 듣지 않아 종로에서 퇴근하고 부산까지 일방 통행으로 갔다고 했다. 씨발 그래서, 지금 나더러 죄책감을 가지라는 겁니까?

#9

수술이 잘 되어 아빠는 직장도 잃지 않았고 지금은 마라톤 대회에도 꼭 참여하신다. 아빠의 수술 후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빠의 명령에 대체로 복종한다. 그러니까 ‘전 가족 회동일; 같은 것들. 최근 들어서는 2주마다 반드시 가는 편이다. 휴학이라 달리 댈 핑계가 없어서.

#10

지난 해와 달리 생일 다음날 내가 와버렸으니 아빠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막상 생일 당일에는 회사일로 바빠서 신경쓰지 못했을 테니. 아빠는 당일에 챙겨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 20%, 아빠로서의 체면치레 80%로 대뜸 나의 음력 생일을 말씀하셨고, 나는 “나 또한 별 신경쓰지 않는 생일이니 그냥 넘어가달라”고 했다.

#11

방세에 생활비에 등록금까지 벌어야 하는 나는 생일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다만 원망하는 것이 있다면 부친이 대기업 부장 씩이나 되면서 계모 때문에 지금 내가 이 고생을 한다는 것 정도? 무튼 음력 생일 같은 건 이미 삭제되고 알바하느라 바빴던 난 갑작스레 아빠의 연락을 받았다. 케익 샀는데 지금 어디냐고.

#12

차라리 아빠가 끝까지 무관심한 사람이어서 내가 맘껏 싫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대 초반에는 그랬다. 아빤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절대악이었고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번 생일도 그랬다. 차라리 까먹어서 미안하다고 했으면 바랐다. 굳이 없던 ‘음력생일’ 운운하며 체면치레 하는걸 혐오했다. 그런데 오늘 받은 케익에서 기다란 초 2개와 짧다란 초 5개가 삐죽 나와있는 걸 보자 눈물이 났다. 생일케익을 사며 점원에게 “초는 스물 다섯개 주세요”했을 그에게. 

#13

케익을 전해받은 시각은 밤 9시. 부천가면 10시 반. 출근은 7시. 5시 반에 집에서 나와야 할 시각. 나는 짜증내며 얼른 집에 가라며 알바하러 들어와버렸다. 아빠의 마지막 말은 “생일 선물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라” 였다.

#14

생각해보면 돈 없는 조부모 밑에서 겨우 대학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함으로써 자수성가한 아빠였다. 늘 서울에서 혼자 살았고 결혼 4년 차에 이혼했으며 혼자 외국을 떠돌았다. 나와 동생, 조부모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빠가 가족을 어색하게 대하는 것도, 내가 그런 아빠를 어색하게 대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15

잘 모르겠다. 애증이란 모호한 개념으로 정의하고 싶지 않지만.. 아빠는 내게 그런 관계로 점철되어 가는 중이다. 이런 일로 내가 아빠한테 미안해 해야하는 것도 원망스럽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아빤 날 생각해준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래 지켜보면서 우리의 관계를 기록하고 싶다.

#16

당신 편한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지만 어쨌든 당신 때문에 내가 여기 있고 그런 날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부디 건강하세요. 

0 notes

"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 엄청난 그리고 추리해낸 착란에 의해서 자신을 의식적으로 견자로 만듭니다.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시인은 그 자신을 추구합니다. 자신 속에 모든 독소를 걸러내어 오직 그 정수만을 간직하려는 것입니다. 그의 모든 신앙과 초인적인 모든 그의 힘이 필요한 말할 수 없는 고역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가장 위대한 죄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범죄자, 가장 위대한 저주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상의 박식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미지 세계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왜냐하면 그는 그의 영혼을 단련해서 가꾸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 누구보다도 풍요해진 영혼을!


그는 미지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미쳐 날뛰며 자기 환각들에 관한 지식을 상실하고 말 때에 그는 반드시 그 환각들을 볼 것입니다. 그는 지극히 엄청나고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사물들에 의한 약동 속에서 죽어도 좋습니다. 그때에는 가공할 만한 다른 작업자들이 올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쓰러진 바로 그 지평선에서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랭보, <견자의 편지> 부분, 1871.5.15, 이준오 역

2 notes

"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열자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 - 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 - 만을 영수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끔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굿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로니를 실천해 보는 것도 놓을 것 같소. 위트와 파라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다.

19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인 듯싶소.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화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하는 것이니……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상채기도 머지 않아 완치될 줄 믿소. 굿바이.)

감정은 어떤 ‘포우즈’. (그 ‘포우즈’의 원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우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할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벌과 미망인……. 세상의 하고 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이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 ‘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독이 되오? 굿바이.

"

이상, <날개> 도입부 전문

0 notes

"나는 당신들이 듣게 될 진지하고 냉정한 구절을 흥분됨이 없이 큰 소리로
낭독할 생각이다. 당신들은 그 구절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에 주의하고, 그
것이 당신들의 혼란된 상상력 속에 치욕처럼 남겨줄 고통스런 인상을 간직
하라. 나는 아직 해골이 아니며, 노후가 나의 이마에 들러붙지 않았으니, 내
가 죽어가고 있는 중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라. 따라서 생명이 달아나려 하는
순간의 백조와 비교하려는 일체의 생각은 버리자. 당신들은 당신들의 앞에서
하나의 괴물만을 보라. 당신들이 그 괴물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면 좋겠다."

로트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 p.57-58, 이동렬옮김, 민음사.

0 notes

blue-voids:

Xia Xiawan

blue-voids:

Xia Xiawan

469 notes

"

인파이터
-코끼리군의 엽서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
하지만 머나먼 구름들이 선전포고를 해온다면
나는 벙어리처럼 끝내 싸우지.
김득구의 14회전, 그의 마지막 스텝을 기억하는지.
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도 없어요
내 눈앞에 나 아닌 네가 없듯. 그런데,
사과를 놓친 가지 끝처럼 문득 텅 비어버리는
여긴 또 어디?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내리는 눈 속을 걸어
가장 어이없는 겨울에 당도하고 싶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고양이가 도착한 곳.
하지만 커다란 가운을 걸치고
나는 사각의 링으로 전진하는 거야.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넌 내가 바라보던 바다를 상상한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에는 날 잊어줘.
사람들을 떠올리면 에네르기만 떨어질 뿐.
떨어진 사과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거기 서해 쪽으로 천천히, 새 한 마리 날아가데.
모호한 빛 속에서 느낌 없이 흔들릴 때
구름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돌처럼 굳어
다시는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없지.
안녕.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고양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잖아? 그러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구름의 것은 구름에게.
나는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

"

이장욱, <인파이터 - 코끼리군의 엽서> 전문

"근하신년
ㅡ 코끼리군의 엽서

너에게 나는 소문이다.
나는 사라지지 않지.
나는 종로 상공을 떠가는
비닐봉지처럼 유연해.
자동차들이 착지점을 통과한다.
나는 자꾸
몸무게가 제로에 가까워져
밤새 고개를 들고 열심히
너를 떠올렸다.
속도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야.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가 있을 뿐.
나는 아무 때나 정지할 수 있다.
완벽하게 복고적인 정신으로 충만하고 싶어.
가령 부르주아에 대한 고전적인 적의 같은 것.
나를 지배하는
기압골의 이동 경로, 혹은
저녁 여덟 시 홈드라마의 웃음.
나는 명랑해질 것이다.
교보문고 상공에
순간 정지한 비닐봉지.
비닐의 몸을 통과하는 무한한 확률들.
우리는 유려해지지 말자.
널 사랑해."

이장욱, <근하신년 -코끼리군의 엽서> 전문

1 note

"근하신년
ㅡ 코끼리군의 엽서

너에게 나는 소문이다.
나는 사라지지 않지.
나는 종로 상공을 떠가는
비닐봉지처럼 유연해.
자동차들이 착지점을 통과한다.
나는 자꾸
몸무게가 제로에 가까워져
밤새 고개를 들고 열심히
너를 떠올렸다.
속도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야.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가 있을 뿐.
나는 아무 때나 정지할 수 있다.
완벽하게 복고적인 정신으로 충만하고 싶어.
가령 부르주아에 대한 고전적인 적의 같은 것.
나를 지배하는
기압골의 이동 경로, 혹은
저녁 여덟 시 홈드라마의 웃음.
나는 명랑해질 것이다.
교보문고 상공에
순간 정지한 비닐봉지.
비닐의 몸을 통과하는 무한한 확률들.
우리는 유려해지지 말자.
널 사랑해."

이장욱, <근하신년 -코끼리군의 엽서> 전문

2 notes